“너는 가동률, 나는 IRA” 현대차-SK온, 미국 시장 내 ‘윈윈 전략’ 채택

SK온, 조지아주 배터리 2공장 현대차 용도로 전환
원자재부터 가공까지, 배터리 공급망 안정 힘쓰는 현대차
수주 경쟁 이어가는 국내 배터리 빅3, 현대차는 '골라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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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와 SK온이 미국 시장 내 협력 관계를 본격화한다. SK온은 합작사 설립에 앞서 ‘포드 전용’이었던 미국 조지아주 공장 일부 라인을 현대차용으로 전면 개편할 예정이다. 이르면 3분기부터 양산이 시작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시장에서는 이번 협력이 양사 모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흘러나온다.

SK온, 포드 전용 라인 현대차용으로

21일 업계에 따르면, SK온은 미국 조지아주 잭슨카운티에 위치한 배터리 공장을 현대차 용도로 전환하고 있다. 현재 SK온이 조지아주에 보유하고 있는 자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은 2개다. 1공장은 9.8GWh 규모로 주로 폭스바겐 전기차(ID.4 등 MEB 플랫폼)에 공급되는 배터리를 생산 중이며, 2공장은 11.7GWh 규모로 주로 포드에 공급할 배터리를 생산했다. SK온은 이 중 기존 고객사인 포드에 맞춰졌던 2공장 배터리 생산라인을 현대차에 맞게 개조할 예정이다. 전환은 8월 말까지 완료될 예정이며, 이르면 9월부터 현대차용 배터리가 양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전환은 포드 전기차 판매 감소로 가동률이 하락한 SK온과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북미산 배터리가 필요한 현대차의 ‘윈-윈’ 전략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IRA에 따라 배터리 부품과 핵심 광물 원산지 요건을 충족하고,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를 대상으로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차는 지금까지 IRA 보조금을 받지 못했다. 현재 미국에서 GV70 전기차를 생산 중이지만, SK온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를 탑재해서다.

현대차는 올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미국 전기차 전용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번 라인 전환으로 IRA 요건을 충족하는 북미산 배터리를 공급받게 될 경우,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SK온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전기차 시장 둔화 기조를 타파할 ‘기회’를 얻게 됐다. 기존 고객사인 포드가 SK온 배터리를 탑재하는 전기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 생산량을 줄이면서 배터리 재고가 누적, 공장 가동률이 하락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배터리 공급망 강화 전략

업계는 현대차가 배터리 공급망 강화에 꾸준히 힘을 싣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차는 이전부터 배터리 제조사와의 가격 협상력 제고, 중장기적인 ‘배터리 내재화’ 등 공급망 안정을 위한 전략을 펼쳐왔다. 전기차 시대가 도래하며 배터리가 차량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까지 급등한 가운데, 배터리를 자체 공급할 수 없는 완성차 업계가 줄줄이 시장 ‘을’로 전락하며 내부 위기감이 가중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현대차는 시장 내 영향력을 지키기 위해 자체적인 배터리 공급망 강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월 배터리 주원료인 리튬의 장기 구매 계약을 체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현대차는 세계 1위 리튬 생산 업체인 중국 간펑리튬(Ganfeng Lithium)과 수산화리튬 장기 구매 계약을 맺었다. 이에 따라 간펑리튬은 올해 1월부터 2027년 12월 말까지 4년간 현대차에 수산화리튬을 공급한다. 같은 달 중국 성신리튬에너지와도 4년간 수산화리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두 계약 모두 공급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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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펑리튬 배터리/사진=간펑리튬

한편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차후 배터리 자체 생산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중장기적으로 전기차 가격을 낮추고, 배터리 회사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실상 배터리 내재화가 필수적이라는 분석이다. 배터리 내재화를 위해서는 핵심 광물 조달과 제련, 중간재 가공에 이르기까지 수직 계열화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8월 국내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의 지분 5%를 인수한 데 이어, 니켈 광산 개발부터 제련·중간재 가공까지 폭넓은 사업 제휴를 체결한 바 있다.

국내 ‘배터리 3사’와 나란히 협력?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국내 ‘배터리 빅3(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기업 모두와 협력 관계를 강화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2세대 플랫폼 배터리의 다양·다변화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협력사를 늘려갈 것이라는 시각이다. 실제 현대차는 지난해 6월 2세대 플랫폼 도입 계획을 밝히며, 배터리 폼팩터(외형)의 다변화와 배터리 솔루션(방식)의 다양화를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현대차가 폼팩터 다변화를 목표로 내세운 것은 2025~2030년 개발·출시 예정인 현대차 4종, 제네시스 5종의 승용 전기차에 적합한 배터리를 탑재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삼성SDI와 각형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또 현대차는 기존엔 니켈·코발트·망간(NCM)을 사용한 리튬이온 배터리를 주로 사용했지만,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사용도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LFP 배터리를 제조하는 중국 기업과도 공급 논의를 하고 있다.

부진한 배터리 업황은 이 같은 다양화 시도에 힘을 실어줬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SK이노베이션) 등 2차전지주의 주가는 올해 초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북미·유럽 시장의 전기차 수요가 급감하며 배터리 업계 전반의 실적이 곤두박질친 영향이다. 특히 SK온의 경우 지난해 4분기 흑자전환을 목표로 했지만, 결국 18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이에 각 기업들은 시장의 기대를 높이기 위한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다. 다양한 기업과 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현대차에 상당히 유리한 시장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현대차, 배터리 공급 전략 강화에 재생에너지 기반 시설도

현대차그룹은 이어 22일 스페인 재생에너지 개발 업체 매트릭스 리뉴어블스가 주도하는 신규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와 15년(2025~2040) 장기 전력구매계약(PPA)도 맺었다. 현재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전기차 전용 공장을 재생에너지로 운영하기 위한 취지로, 147㎿(메가와트)급이다. 이는 국내 기업이 맺은 미국 사업장용 재생에너지 계약 규모로는 최대 규모다.

재생에너지 조달로 기대되는 탄소 저감 효과는 연간 약 14만t(톤)으로 추산된다. 준중형세단 8만4,000대가 1년간 내뿜는 탄소와 동일한 수준이라는 게 현대차그룹 설명이다. 확보한 태양광 재생에너지는 전기차 전용 공장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가 직접 사용하고, 이 공장에 전동화 부품과 강판을 각각 공급하는 현대모비스 북미전동화법인(MNAe), 현대제철 조지아법인(HSGA)도 쓸 예정이다. 이번 계약으로 HMGMA는 완성차 공장은 물론, 공급망 차원에서 재생에너지 사용 체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업계에서는 현대차의 이같은 행보가 전기차 시장의 장기 성장을 기대한 포석이라는 평이 나온다. 당초 올해 들어 중국 공장을 닫으면서 전기차에 대한 그룹 내 관심이 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었으나, 연이은 전기차 투자에 시장 주요 관계자들도 미래 전략은 여전히 전기차에 맞춰져 있다고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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