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 혹한기, ‘세컨더리 벤처펀드’가 해결책 되나

IPO 시장 위축 및 정부 움직임에 힘입어 세컨더리 펀드 성장세 중간 회수 시장 확대를 통해 벤처 시장 선순환 기대할 수 있어 한편 세컨더리 펀드 규모 여전히 미비, 거래 활성화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최근 벤처 시장의 세컨더리 펀드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이는 위축된 IPO 시장에 투자자들이 자금 회수의 새로운 창구를 찾아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편 정부 차원의 움직임도 세컨더리 시장 확대를 견인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부 주도 세컨더리 펀드의 자금 마련의 난항을 예상하는 한편 구주 거래 과정 자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VC 투자 시장의 새로운 돌파구, 세컨더리펀드 시장

DSC인베스트먼트(이하 DSC인베)가 2,000억원 규모의 ‘DSC세컨더리패키지인수펀드제1호’ 펀드를 조성한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DSC세컨더리패키지인수펀드제1호는 순수 민간 자금으로 결성돼, 정책 자금을 활용하는 기존 벤처펀드와 달리 투자자 선정에 정부 간섭을 받지 않는다. 또한 만기가 다가오는 벤처펀드를 인수한다는 점에서 개별 기업의 주식을 매입하는 기존의 세컨더리 펀드 방식과는 차별된다.

DSC인베 건 이외에도 지난해부터 세컨더리펀드의 결성 금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또한 업계에서는 올해 세컨더리 펀드 규모가 역대 최대 수준이 될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한국VC협회가 발표한 ‘중소기업창업투자회사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벤처캐피탈(VC)이 결성한 세컨더리펀드 규모는 5,914억원으로 전년 동기(4,914)억원 대비 19.7% 증가했다. 올해의 경우 1분기 552억원 규모의 세컨더리 펀드가 이미 결성됐고, 하반기 DSC인베의 펀드와 모태펀드 출자 펀드들이 결성을 완료하면 6,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세컨더리펀드 결성이 늘고 있는 이유를 IPO 시장의 위축에서 찾는다. 그간 벤처캐피탈, 액셀러레이터, 창업투자회사 등의 투자자들은 기업이 직접 투자하거나 출자하는 펀드인 프라이머리(Primary) 펀드를 통해 투자 수익을 기대해 왔다. 이러한 프라이머리 펀드에 투자할 시 해당 기업의 기업공개(IPO) 또는 기업 인수합병을 통해 자금을 회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최근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및 유동성 악화로 벤처 투자 시장이 위축된 탓에 기존 프라이머리 펀드를 통해 자금 회수가 어려워진 것이다.

이에 비해 세컨더리(Secondary) 펀드는 해당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아닌 투자자가 보유한 주식 또는 펀드의 지분을 매입하는 형태로 투자가 이뤄진다. 즉 투자자들은 위축된 IPO 시장에서 자금 회수를 위해 ‘기약 없는’ 기다림을 하는 대신, 세컨더리 펀드 투자를 통해 자금을 빠르게 회수하고, 나아가 만기 도래 벤처펀드의 주식을 20~30% 할인가에 매입할 수 있어 최근 시장 규모가 빠르게 커진 것이다.

정부 주도의 모태펀드가 세컨더리 펀드의 마중물역할

정부가 모태펀드 조성을 통해 세컨더리 펀드의 마중물 역할을 한 것도 세컨더리 펀드 성장을 견인하는 데 한몫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3월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는 세컨더리 시장 활성화를 위해 ‘모태펀드 2023년 2차 정시 출자공고’를 통해 약 5,000억원 규모를의 세컨더리 규모를 밝힌 바 있다. 그간 볼 수 없었던 일반 세컨더리 펀드를 부활시키고, 사모펀드 자금을 VC 업계에 유입시켜 ‘투자-회수-재투자’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 내는 의도다.

세컨더리펀드는 출자자가 투자한 주식 및 펀드를 인수하는 특성으로 인해 주로 정책자금이 아닌 민간자금으로만 조성돼 왔다. 벤처기업에 직접적으로 자금 유입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최근 벤처 투자시장이 과도하게 위축되자 중간 회수시장 활성화 필요성을 인식하고, 대규모 모태펀드 결성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여기에 중기부가 사모펀드 시장을 연계해 벤처펀드의 중간 회수를 돕는 ‘벤처세컨더리 사모펀드’를 선보이면서, 일반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이 상장 주식뿐만 아니라 비상장 벤처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VC 업계에서는 중간 회수 시장의 창구가 생긴 것은 물론, 사모펀드 시장 자금을 벤처 시장으로 끌어올 수 있게 되면서 스타트업들이 나눠 먹을 수 있는 ‘파이’ 자체가 커진 셈이다.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대다수가 세컨더리 펀드로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한 VC 관계자는 “그간 급격한 금리 인상과 유동성 저하로 인해 VC가 투자한 기업들의 밸류에이션이 큰 폭으로 하락했고, 엑시트를 하지 못해 자금 회수에 난항을 겪고 있던 상황이었다”면서도 “최근 세컨더리 시장의 ‘붐’이 예견되면서 발 빠른 VC들은 이미 세컨더리펀드로 사업의 중심축을 옮기고 있다”고 전했다.

세컨더리 펀드,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냐

이러한 상황에 힘입어 전문가들이 세컨더리 시장의 ‘장밋빛 미래’를 점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세컨더리 시장이 여타 다른 시장과 비교했을 때 그리 성장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5년간 연간 신규로 결성된 벤처조합 대비 세컨더리 펀드의 규모는 5% 안팎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극적인 변화로 인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 주도의 모태펀드 자금 마련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거시 경제 하방 압력에 따라 금융사, 일반기업, 개인 등이 지갑 문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증권사, 은행, 저축은행을 필두로 한 금융사들이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에 따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자금이 묶이면서 자금 유동성이 급격하게 떨어져 세컨더리 펀드에 자금을 유치할 여력이 충분치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편 세컨더리 펀드의 주 투자처가 구주, 그중에서도 만기가 거의 도래한 ‘악성 매물’에 가깝기 때문에 웬만큼 싼 가격이 아니면 거래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을 위험도 존재한다. 오아시스, 컬리, 오늘의집, 무신사 등 ‘중개’ 성격의 이커머스 기업들의 경우 후속 자금 모집에 애를 먹으며 사업 동력이 약화되고 있는 만큼, 아무리 구주 가격이 내려가더라도 투자자 입장에선 구주 인수에 대한 인센티브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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