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한국판 NASA’, 정쟁 속 ‘제자리걸음’에 과학계는 ‘답답’하기만

우주항공청 골든 타임 1개월, 방향타 잡은 野
'한국판 NASA' 기다리는 과학계, 정작 정치권은?
정쟁 잿밥 싸움 이어가는 정계, "정책 논의는 언제쯤"

우주항공청의 연내 개청을 위한 골든 타임이 앞으로 1개월 남짓 남았다. 그러나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처리하겠단 여당의 목표는 불발됐고 남은 정기국회 일정과 혹시 모를 임시국회 일정을 모두 고려해도 시간은 빠듯하기만 하다. 국회는 물론 정부와 관계기관까지 그간의 핵심 쟁점을 큰 틀에서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해법은 이번 주 야당의 결정에 달렸다. 연구자 등 현장 관계자들은 야당의 거수만을 목 빼놓고 기다리고 있지만, 정작 정치권은 정쟁 잿밥에만 더 관심이 많은 모양새다.

파행 거듭한 우주항공청법, ‘키’는 野에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번 주 우주항공청 특별법 논의를 재개할 전망이다. 일각에선 오는 13~14일께 과방위가 그간의 안건조정위원회 결과를 보고받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앞서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통해 “우주항공청법에 의원님들의 각별한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콕 짚은 바 있다. 이에 여당은 속도전 태세를 갖추고 나섰지만, 과방위의 우주항공청 논의 주도권은 여전히 야당이 쥐고 있는 상태다. 여당은 쟁점을 해소하고 서둘러 법안을 처리한 뒤 세부 방안은 차차 조율해 나가는 방향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내 우주항공청법이 과방위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를 차례로 통과해야 하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관 정부조직법 개정까지 뒤따라야 하는 만큼 머뭇거릴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여야가 합의한 정기국회 내 본회의 일정은 이달 23일과 30일, 내달 1일뿐이다. 다만 야당이 속도전에 동참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 있다.

우주항공청법 논의는 거듭된 파행을 이어왔다. 지난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우주항공청 특별법’ 제출 본격화된 우주항공청법 논의는 야당의 요구로 7월 26일 안조위가 구성되며 전환점을 맞이했지만, 입장차를 조금이나마 좁혔을 뿐 끝내 우주항공청의 R&D 수행 관련 이견은 좁히지 못했다. 앞으로 여야는 법안을 과방위로 넘겨 추가 협의를 이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회법 제57조의 2 8항에 따라 안조위원장이 과방위에 심사 경과를 보고해야 한다. 안조위원장은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법안 처리의 ‘키맨’이 조 의원인 셈인데, 여당 입장에선 여기서부터 이미 희망이 없다고 보는 게 상수다. 그나마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이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한국천문연구원의 우주항공청 소속 기관화에 동의한다”고 밝히며 R&D 범위라는 최대 쟁점은 해소됐지만, 야당의 ‘거부’ 의지는 여전히 확고하다. 정계에 따르면 야당 측은 “R&D 범위에 대한 이견은 좁혀졌지만 이를 구체화하는 법 조문 등의 실무 절차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시간이 지연되면서 우주항공청법이 정쟁에 휩쓸릴 가능성도 높아졌다. 연말 예산심사, 야당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움직임 등으로 소관 상임위인 과방위에 흐릿한 안개가 드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우주항공청법이 내년으로 넘어갈 경우 4월 총선을 앞두고 돌출 변수가 등장할 수도 있다. 일각에선 여야 합의가 끝난 입지마저 불안 요소로 본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경남 사천 설치를 공약한 우주항공청이 직접 R&D를 하면 대전의 항우연·천문연이 빈 껍데기만 남는다는 게 R&D 범위 논란의 숨은 본질”이라며 “지역 공약이 빗발치는 총선 시즌에 우주항공청 입지를 두고 또다시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한국판 NASA’ 장밋빛 미래 그린 정부, 하지만

정부가 ‘한국판 NASA’를 구상하며 내놓은 청사진은 장밋빛 미래였다. 정부는 이를 염두에 둔 각종 계획을 거듭 세우며 현장 연구진들의 가슴을 거듭 설레게 하기도 했다. 앞서 지난 2월 정부는 우주항공청 직원 절반 이상을 국내외 민간 전문가로 채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청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차관급 직위로 외국인에게도 문을 열도록 하고, 우주 개발 및 탐사 임무별로 유연한 운영을 위해 조직 구성의 재량권을 최대한 청장에게 부여하겠단 방침이었다. 유능한 박사급 엔지니어를 전문 임기제 공무원으로 채용하기 위해 급여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고도 전했다. 현행 정부조직법은 한 부처 전문임기제 공무원 수가 전체 인원의 20%를 넘지 못하게 제약하고 있는데, 당시 우주항공청 설립추진단은 “우주항공청 구성원의 최소 50% 이상을 외부 석·박사급 전문가로 채우도록 하는 방안을 특별법에 담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대로라면 연봉 10억원 안팎의 ‘스타 과학자’가 정부 부처에서 일할 길이 처음 열릴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물론 ‘한국판 NASA’ 청사진에 문제가 없었던 건 아니다. 실제 우주항공청법이 처음 논의되기 시작할 시점엔 군·정부·대학·연구소 측의 냉소적 반응이 적지 않았다. 당시 기업은 우주 R&D 기관이나 군에서 기업에 우주 물량을 찔끔찔끔 용역 줄 게 아니라 미국처럼 프로젝트 자체를 통으로 계약하는 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창업 초기 네 번 만에 위성 발사에 성공한 뒤 재사용발사체 아이디어로 나사에서 약 3조원의 물량을 수주하며 오늘날 세계 최고의 우주 기업으로 성장했는데, 이를 우리나라에서 시행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군 안팎에서도 범부처와 군을 포괄하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며 내심 볼멘소리가 많았다. 우주항공청이 개청될 경우 항우연과 ADD, KAIST 인공위성센터, 한국전자통신연구원·한국표준과학연구원·한국기계연구원의 일부 등 우주 R&D 기관 간 미흡한 협력 생태계를 어떻게 활성화할 것이냐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국내 최초로 실용 위성을 탑재한 누리호가 우주로 향하고 있다/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정치권 정쟁 청산하고, 정책 미비점 보완해야 할 시점

다만 현장에선 우주항공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누리호(KSLV-Ⅱ) 기술 유출 의혹에 따른 검찰의 항우연 수사가 우주항공청의 필요성을 뒷받침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앞서 지난달 31일 대전지검은 과기정통부 감사실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의 이직을 앞둔 항우연 연구자 4명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들이 항우연의 누리호 기술자료를 여러 차례 열람했는데, 이 같은 행위가 적절했는지 여부가 의혹의 핵심이었다. 우주개발의 주도권이 공공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는 ‘뉴스페이스 시대’ 길목에서 벌어진 사건이니만큼 연구 관계자들의 주목도는 높았다. 과학계는 이번 사건의 실체와 별개로, 앞으로 공공 우주기술의 민간 이전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전문가들은 “앞으로 우주항공청이 민간 기술 이전과 산업 육성 등을 위한 규정·체계를 확립하고 경험을 축적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우주항공청 개청에 대한 의견은 다소 엇갈리고 있다. 새로운 길목으로 들어서는 데 찬반 논의가 이어지는 현상은 자연스러운 모습에 틀림 없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권에서 우주항공청을 정쟁의 볼모로 삼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주항공청법이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에서 허점이 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어떤 부수적인 정책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정작 여야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수단을 얻기 위해, 중요한 줄기를 반대함으로써 다른 잿밥을 얻기 위해 각기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우주항공청이 볼모로 붙잡힌 사이 현장 연구자들의 고통은 가중되기만 한다. 정치권은 하루빨리 정쟁을 청산하고 우주산업을 파격 육성할 수 있도록 제도 미비점 보완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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