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컬리’, 쏘카의 길 vs 현대오일뱅크의 길

컬리(Curly), 한국거래소 상장예비심사 승인 받아 ‘쏘카’ 상장 후 주가 하락, 컬리도 비슷한 행보 걸을까? 벤처투자사들의 ‘상장 시점’ 논리는 궁색한 변명이란 비난도

사진=컬리

컬리(Curly)가 한국거래소의 상장예비심사에서 승인을 받았다. 예선을 통과한 셈이다. 한국거래소 규정에 따르면 상장예비심사에서 승인받은 기업은 6개월 이내에 상장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지난 8월 22일에 승인받았으니 내년 2월 21일까지가 6개월의 기한이다. 여러 이유로 기한 연장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시장에 나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연장을 선택하는 경우는 사실상 드물다.

2013년 창업부터 2021년 말까지 9년간 컬리의 누적 투자 금액은 9천억원, 누적 영업손실은 5천억원으로 집계됐다. 증권가에서는 작년의 영업손실이 2,200억원대였던 만큼, 올해도 최소 2천억원대의 영업손실을 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컬리 관계자는 영업 활동에서 현금흐름이 있는 만큼 당장 위기에 처할 일은 없다는 반응이지만, 이번에 상장을 선택하지 않으면 내년 하반기가 되기 전에 보유 현금을 모두 소진하리라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쏘카의 길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던 공유차량업체 쏘카는 ‘무리’라는 비난 속에 상장을 선택했다. 8월 22일 공모가 28,000원에 상장된 쏘카의 주가는 8월 31일 25,900원까지 하락했다. 기존 목표가 밴드였던 34,000원~45,000원에서 최대 40% 이상 하락한 공모가라는 자체 주장에도 불구하고, 주가 흐름은 지속해서 우하향 곡선을 그렸다.

개인 투자자들은 상장 후 최대 70~80% 수준까지 하락한 작년 대형 공모주들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쏘카가 유사한 주가 흐름을 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속적인 적자로 성장성이나 비전에 투자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면서, 실적이나 M&A 등의 대형 재료 없이는 2만원대도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비관론도 있다. “경기 침체인데 왜 상장을 선택했느냐”는 비난에, 증권가는 “현금 흐름이 악화하는데 추가 투자를 유치하기 어려울 만큼 글로벌 자금 시장이 경색된 상황이라 궁색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컬리의 상장도 투자자들에게 비슷한 관점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컬리 역시 막대한 누적 영업 손실을 보고 있으며, 당분간은 개선될 여지도 없다. 또한 자금 경색을 피하고자 상장이라는 선택지를 고른다는 비난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당초 쏘카는 벤처 투자기관들로부터 1조2천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이번 상장 시점에는 1천억원의 추가 투자금이 유입되는 와중에 상장 기업가치를 9,600억원대로 잡았다. 최소 3천억원 이상 몸값을 낮춘 것이다. 컬리의 경우 지난해 12월 2,500억원의 시리즈 F 투자를 받던 시점에 4조원의 가치를 인정받았으나, 연내에 상장을 시도할 경우 2조원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대오일뱅크의 길

현대오일뱅크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이 매월 반복되면서 글로벌 자금 시장이 빠르게 경색되자 상장을 포기했다.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려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겠다는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현대오일뱅크의 경우 컬리와 달리 운용자금 압박이 없는 만큼, 2~3년 후 시장 상황이 지금보다 나아졌을 때를 선택하는 것이 주주들에게 최적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상장 최적 시점은 언제?

한편 벤처투자 업계 관계자들의 “상장 시점을 놓친 기업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주장에 그간 벤처기업들의 과도한 기업가치평가 탓에 발행시장에 주도권을 빼앗겼던 증권 업계 관계자는 “금융시장 경색에도 불구하고 벤처투자사들의 ‘상장 시점’ 논리는 궁색한 변명”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이어 “상장 시점을 놓쳤다는 표현보다 투자자들을 호구 잡을 기회를 놓쳤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상장 최적 시점은 기업의 가치를 ‘합리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점이지, ‘최대치’를 받을 수 있는 시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증권 업계 관계자는 컬리의 김슬아 대표에 대해서 “신선식품 유통에 농협, 수협 등의 정책적으로 지원되는 집단과 대기업 마트들의 과점을 깬 것은 괄목할만한 성과임은 틀림없다”면서도 “지금 컬리가 걷는 길은 유통업계 관계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었던 길이지만, 단지 돈이 없어서 못 걸었던 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 돈을 투자한 벤처투자사가 마지막 폭탄 돌리기를 IPO라는 선택지로 풀어내겠다는 것은 유통업계 속사정을 몰랐던 벤처투자사들의 실책을 개인 투자자들에게 덮어씌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누구나 다 할 수 있었던 길이지만 실제로 해낸 사람이 위대한 것이 아니냐는 반박에도 “되려 유통업계 전문가였으면 더 적은 금액으로도 가능했을 것”이라며 “대기업 마트들이 온라인으로 주력 플랫폼을 옮겼을 때 과연 컬리가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표가 있었는데 식품 유통업계 전문가들이라면 공통된 의견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피력했다.

익명을 요구한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도 수많은 벤처기업이 투자금이 없어 실현하지 못 하는 사업 모델들을 갖고 있다”며 “어쨌든 김슬아 대표는 투자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설령 상장을 못 해도 이 정도까지 신선식품 판매 조직을 키운 역량만큼은 비교군을 찾기 힘들다”고 밝혔다. 이어 “투자 업계가 그간 기업가치평가에 관대했던 것은 사실이나, 폭탄 돌리기 등으로 매도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반박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티몬은 한때 2조원의 기업가치를 평가받기도 했으나, 동남아시아 온라인 상거래 업체인 큐텐(Qoo10)에 2,000억원대의 주식교환으로 매각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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