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업계 ‘큰손’으로 등극한 엔비디아, 스타트업 투자 늘리는 이유는

엔비디아, 업계서 가장 인기 있는 벤처 투자자 중 하나로 우뚝
빅테크들, 강력한 자금력 앞세워 미래 먹거리 분야 우위 확보 
자사 생태계 확대해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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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시그라프(SIGGRAPH) 2023’에서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엔비디아

인공지능(AI) 반도체 최강자인 미국 엔비디아가 지난해 스타트업 투자 건수를 크게 늘리며 벤처 시장의 큰손으로 등극했다. 이는 미래 유망 스타트업들을 선별해 직접 투자함으로써 AI 반도체 선두 기업의 입지를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으로 분석된다.

엔비디아, 지난해 30여 개 스타트업 투자

10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금융정보업체 딜로직을 인용해 엔비디아가 작년 약 30개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2022년에 비해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엔비디아의 타 업체에 대한 투자 가치 역시 1월 기준 15억4,600만 달러(약 2조300억원)로, 지난해 1월(2억9,900만 달러) 대비 5배 가까이 늘었다. WSJ는 “엔비디아의 벤처 투자가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며 ”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벤처 투자자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고 평가했다.

엔비디아는 AI가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에 적극 투자하면서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작년 7월 생명공학 기업 리커전 파마슈티컬스에 5,000만 달러를 투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업체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AI를 활용한다는 점을 내세워 엔비디아의 투자를 이끌어냈다. 엔비디아 인프라를 사용하는 회사에 대한 투자도 많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자사 반도체를 사용하는 프랑스 수술 로봇 업체 ‘문 서지컬’과 자사 AI 반도체로 구성된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코어위브’에도 투자를 집행했다.

엔비디아의 투자는 금액 자체보다는 일종의 ‘보증 수표’로 가치가 더 크다. 투자 유치 자체가 ‘엔비디아에 인정받았다’는 신호를 주기 때문이다. 실제 음성 인식 AI 기업인 ‘사운드하운드 AI’는 지난 2월 엔비디아의 투자를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주가가 하루 만에 67% 오르기도 했다.

국내에선 영상을 이해하는 AI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트웰브랩스가 지난해 10월 엔비디아에서 투자받았다. 엔비디아가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한 첫 사례로, 오픈AI의 GPT, 메타 라마 등 주요 AI 모델이 텍스트, 이미지 등에 집중하고 있는 반면 트웰브랩스는 영상에 특화됐다는 점에서 잠재력을 인정받은 것이다. 

지난해 AI 스타트업 확보자금 3분의 2는 빅테크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이 시작된 이후 미국 빅테크들이 관련 분야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양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해 AI 스타트업들이 확보한 자금 270억 달러(약 34조8,000원) 가운데 3분의 2는 마이크로소프트(MS)·알파벳(구글 모회사)·아마존 등 3곳에서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벤처자본의 투자는 2021년 고점을 찍고 급격히 감소하고 있지만 빅테크들의 투자 확대에 힘입어 AI 스타트업에 대한 전체적인 투자 규모는 종전 최고치였던 2021년 110억 달러(약 14조2,000억원)보다 급증한 상태다. MS는 지난해 1월 100억 달러(약 12조9,000억원)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챗GPT 개발사 오픈AI에 140억 달러(약 18조원)를 투자해 지분 49%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AI 스타트업 허깅페이스는 지난해 8월에 2억3,500만 달러(약 3,000억원)의 자금을 유치했으며 여기에는 알파벳·아마존을 비롯해 엔비디아·AMD·인텔·IBM·퀄컴·세일즈포스 등이 대거 참여했다. 또 알파벳과 아마존은 오픈AI의 경쟁자로 꼽히는 앤스로픽에 각각 최대 20억 달러(약 2조6,000억원), 40억 달러(약 5조2,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통적으로 스타트업들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던 벤처자본들이 고금리 등에 직면해 투자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었으나, 빅테크들은 강력한 자금력을 앞세워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우위 확보에 나선 상태다. 게다가 빅테크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스타트업의 기업 가치가 빠르게 올라갔고, 기업공개(IPO) 가뭄과 엑시트(투자금 회수) 가능성 하락 등으로 벤처자본의 투자 여지가 줄어든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10년 후의 비전을 기반으로 한 벤처투자

빅테크들이 직접 벤처투자에 나서는 것은 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자사 생태계 확대하기 위함이다. 엔비디아의 두 개의 벤처투자 부문 중 한 부서를 이끄는 비샬 바그와티는 이와 같은 투자 확대가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었으며 회사가 AI 열풍의 최전선에 서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이라고 전했다. 이어 “우리 플랫폼이 성장하면서 생태계도 성장했다”며 “이러한 생태계의 일부로 우리 플랫폼에 있는 기업 중 우리가 지원하고자 하는 곳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고 밝혔다.

지난해 엔비디아가 투자한 스타트업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곳으로는 클라우드 컴퓨팅 스타트업 코어위브가 꼽힌다. 코어위브는 엔비디아의 AI 칩으로 구성된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며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같은 빅테크와 경쟁한다. 바그와티는 엔비디아가 “자사 인프라를 사용하지 않는 기업에는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며 “코어위브는 엔비디아의 칩이 중심이 되고 있는 새로운 산업, 즉 AI 칩을 전문으로 하는 클라우드 컴퓨팅 제공업체의 성장을 돕고 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의 벤처 투자 전략을 통해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구상하는 미래 전략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제로 황 CEO는 의료 및 신약 개발 분야에 AI를 적용하기에 적합하다고 강조해 왔으며 실제로 해당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그는 지난 1월 JP모건 헬스케어 컨퍼런스에서 엔비디아가 5,000만 달러를 투자한 리커전의 마틴 차베즈 이사회장과 대담을 나누며 “우리는 상당히 능숙한 투자자”라며 “계산이나 AI와 어려움을 겪는다면 이메일을 보내주시면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전하기도 했다.

엔비디아와 지난해 AI 스타트업 코히어의 펀딩 라운드에 참여한 톰베스트 벤처스의 우메시 파드발 전무이사는 황 CEO의 투자 전략이 10년 후의 비전을 기반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파드발은 “코히어와 같은 고객은 엔비디아가 다음 칩을 개선하기 위해 칩에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와 소프트웨어에 대해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며 “따라서 올바른 기능과 성능을 얻기 위해 두 회사가 모두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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