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원툴’에서 ‘품질’까지 잡은 중국산, ‘메이드 인 차이나’의 한국 침투기

'가성비'로 먹고 살던 중국 제품, "이젠 품질도 안 밀린다"
삼성·LG 앞지르기 시작한 중국산, 로봇청소기 분야는 이미 중국이 '우위'
서비스센터 개설한 TCL, A/S 서비스마저 중국에 밀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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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CL이 공개한 115인치 괴물 TV ‘115QM89’의 모습/사진=TCL

그간 ‘가성비’ 하나로 연명하던 중국산 TV가 글로벌 톱클래스에도 밀리지 않는 기술력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올 초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4’에서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제품도 중국 가전기업 TCL의 115인치 미니 LED TV였다. 10여 년 전만 해도 내수시장 공략에만 매진하던 중국 전자업체들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기술 발전을 이뤄 해외까지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모양새다.

한국 시장 사로잡은 중국산, “사실상 국산 앞질렀다”

최근 초대형 TV, 로봇청소기 등 중국산 고가 가전이 한국 가정에 침투하고 있다. 중국 가전업체의 한국 시장 공략 품목이 보조배터리 등 값싼 소품에서 프리미엄 제품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 시장 공략에 가장 적극적인 중국 가전업체는 TCL이다. TCL은 지난해 11월 한국법인을 세우고 전국에 38개의 사후서비스센터를 개설했다. 지난 2년간 쿠팡을 통해 TV를 판매해 본 결과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022년 3월 쿠팡에서 처음 출시된 TCL의 ‘C845’ 시리즈는 55인치부터 85인치까지 전 제품이 5분 내 품절되는 대란을 일으킨 바 있다. 업계에선 그동안 TCL이 국내에서 판매한 TV만 수만 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가전제품의 인기 비결은 품질이다. TCL의 QLED TV 85인치 제품(모델명 C645)은 AI 프로세서를 통한 화질 개선, 고화질 영상 솔루션인 HDR10+ 등 같은 크기의 삼성 LG 제품에 있는 기능을 거의 다 갖췄다. 그런데도 무게는 36.5㎏으로 삼성(41.5㎏)과 LG(45.2㎏)보다 가볍고, 여기에 최고급 입체 사운드인 돌비앳모스까지 장착했다. 두 번째 인기 비결은 가격이다. 해당 제품의 판매가는 169만원으로, 비슷한 사양의 국산 제품 가격이 약 250만원임을 고려하면 매우 저렴하다. 단순 가성비에 치우쳐 있던 중국산 제품이 기술력을 갖추며 ‘가심비’까지 채울 수 있게 되면서 중국산 제품과 국산 제품 사이의 간극은 급격히 좁혀졌다.

중국 가전이 기술력을 갖출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적극적인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였다. 실제 중국 가전은 2000년대 전후를 기점으로 급격히 규모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하이얼은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사업부, 뉴질랜드 피셔&파이클, 이탈리아 캔디를 잇달아 손에 넣었고, 하이센스는 도시바 TV사업부, 유럽 가전업체 고렌예와 자동차용 에어컨업체 샌든홀딩스를 사들였다. 인수한 기업의 기술을 전부 빨아들여 첨단 기술 개발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자체 개발한 AI를 가전에 접목한 점도 기술 격차를 좁히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올해에도 중국 전자업체들은 첨단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다수 선보였다. TCL이 내놓은 스마트글라스 ‘레이 네오 X2 라이트’가 대표적이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프리미엄 가전 분야에서 LG전자와 삼성전자가 아직은 우위에 있지만, 머잖은 시기 중국과 한판 승부를 벌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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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슨’ 디베아 D18 무선청소기/사진=디베아

시장은 이미 ‘중국판’, “아직은 삼성·LG가 우위지만”

품질 등 문제로 소비자의 눈 밖에 났던 중국산 제품은 이제 쉽게 무시하지 못할 수준까지 성장했다. 특히 로봇청소기와 고사양 노트북 등 분야는 이미 ‘중국판’이 됐다는 게 시장 전문가의 설명이다. 이는 지표로도 확인해 볼 수 있는 사안이다. 지난 2020년 한국에 입성한 로보락은 고작 2년 만에 한국 1위 자리에 올랐다. 로보락의 대표 모델(S8 프로 울트라) 가격은 150만원으로, 120만원 안팎인 삼성 LG 최상위 라인보다 가격대가 있음에도 시장을 사로잡았다. 먼지를 흡입한 뒤 물걸레로 닦고 청소를 마치면 걸레를 세척·건조하는 등 첨단 기능이 장착된 덕분이다. 중국 드론업체 DJI는 한국 민간 드론 시장을 장악한 데 이어 공공안전 분야로 영토를 넓히고 있다. 일반 PC보다 높은 사양이 필요한 게임용 PC 시장은 중국계인 레노버(점유율 11.5%)와 에이수스(17.6%)가 미국 HP(14.2%)와 경쟁하는 형국이다. 삼성과 LG의 점유율은 5%에도 못 미친다.

중국 가전업체의 약진은 수치로도 확연하다. 삼성(18.5%)은 지난해 세계 TV 점유율(출하량 기준) 1위 자리를 지켰지만 LG(11.6%)는 4위로 처졌다. 그 사이를 채운 건 다름 아닌 하이센스(13.7%)와 TCL(13.3%) 등 중국 업체였다. 하이센스와 TCL의 출하량이 전년 대비 각각 12.4%, 16.3% 늘어난 반면 삼성과 LG는 각각 9.8%, 7.4% 감소한 여파다. 로봇청소기는 중국 업체들이 세계 시장의 절반 이상을, 민간용 드론은 DJI 한 곳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PC의 제왕’은 세계 시장의 4분의 1을 점유한 레노버다. 업계에선 중국산 가전제품의 프리미엄 시장 점유율은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가격뿐 아니라 품질과 디자인 경쟁력도 강해지고 있어서다. TCL의 TV(모델명 QM8)와 로보락의 로봇청소기(Q5 시리즈)는 뉴욕타임스 제품 리뷰 서비스인 와이어커터에서 올해 추천 상품으로 선정됐고, TCL의 사운드바(S6)는 지난해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레드닷어워드에서 제품 디자인 부문 상을 받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를 앞세워 디지털 강국을 자처하던 한국은 과거의 유산으로 전락할 위기다.

이제 남은 건 A/S 서비스 정도다. 중국산 제품은 특성상 A/S 서비스의 질이 낮은 편이다. 실제 지난 2019년 이른바 ‘차이슨’ 대란 이후 부실한 A/S로 인해 다수 소비자가 피해를 입은 사태가 벌어진 바 있기도 하다. 차이슨이란 영국 프리미엄 가전 다이슨과 차이나(china)의 합성어로 중국산 가전을 통칭하는 신조어다. 이들 차이슨 브랜드들은 2019년께 3~4만원대의 저렴한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부실한 A/S 서비스로 인해 몰락했다. 단 한 개의 서비스센터를 통해 모든 문의 사항을 처리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반해 삼성과 LG는 전국에 각각 178개, 130여 개의 서비스센터를 구축하고 있다. A/S 서비스 측면에 있어선 여전히 국내 제품이 강점을 지닐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 TCL도 전국 38개까지 서비스센터를 늘리는 등 A/S 서비스 질 높이기에 혈안이 된 상태다. 서비스에서마저 뒤처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단 의미다. 국내 전자업체와 그 아래 줄줄이 달린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식구들의 고심이 깊어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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