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내연기관 엔진 만들자” 전기차 향해 달리던 현대차의 유턴

현대차, 2년 만에 신형 내연기관 엔진 개발 돌입
조직 개편·생산 라인 폐쇄 등 '전동화 움직임'에 제동
가라앉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 '100% 전동화' 당장은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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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의 세단형 전기차 아이오닉 6/사진=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그룹(이하 현대차)이 2년 만에 신형 내연기관 엔진 개발에 착수했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점차 둔화하는 가운데, 현대차의 핵심 수출 시장인 EU·미국이 배출가스 규제를 완화하며 엔진 개발 필요성이 부각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는 연구개발(R&D)본부 전동화성능개발센터 내에 50~200명 규모 엔진설계실을 신설, 기존 전동화 부서로 분산된 내연기관 연구개발 인력을 집결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전동화’에 박차 가하던 현대차

지난 2021년, 현대차그룹은 대대적인 연구소 조직 개편을 단행한 바 있다. R&D 본부 내 엔진개발센터를 폐지하고, 기존 조직들을 전동화 관련 조직으로 개편하는 것이 골자였다. 폐지된 엔진개발센터 산하 조직들은 전동화설계센터 등 여타 센터 산하로 이동했다. △파워트레인시스템개발센터를 전동화시험센터로 △파워트레인성능개발센터를 전동화성능개발센터로 △파워트레인지원담당을 전동화지원팀으로 명칭을 각각 변경했다.

이에 더해 현대차는 전동화개발담당 산하에 배터리개발센터를 새로 구축했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를 양산하지는 않더라도 기술 개발을 주도하겠다는 의미다. 배터리개발센터 내에는 배터리설계실과 배터리성능개발실, 배터리선행개발실 등이 자리 잡는다. 당시 신규 연구개발본부장에 임명된 박정국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우리의 독자 엔진 개발은 괄목할 만한 업적이지만, 과거 큰 자산을 미래의 혁신으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체계를 변경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당 조직 개편은 현대차의 과감한 ‘전기차 전환’ 의지를 드러내는 사례다. 자체적인 내연기관 엔진 개발은 현대차·기아가 급성장할 수 있도록 이끈 1등 공신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내연기관 엔진 개발 사업이 장기간 현대차의 튼튼한 ‘발판’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대차는 과감하게 내연기관 엔진 개발을 뒤로 하고 전기차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기존의 강점을 포기하며 급성장이 전망되는 전기차 시장에 일종의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내연기관용 부품 생산 일부 중단

지난해 12월에는 현대자동차가 내연기관 부품 생산을 줄줄이 중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내연기관 부품을 생산하던 일부 생산 라인을 폐쇄하고, 첨단 공법을 적용한 전기차용 공장 건설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방침이다. 폐쇄가 예정된 라인은 1991년부터 32년간 가동되던 울산 공장 내 단조 1·2공장이다. 단조는 금속을 두드리고 눌러 형태를 만드는 공정으로, 내연기관차용 엔진·변속기 부품을 생산하는 데 활용된다.

현대차는 내연기관 부품에서 힘을 빼는 대신, 첨단 전기차 제조 공법인 ‘하이퍼캐스팅’ 기술을 본격 도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이퍼캐스팅은 테슬라의 전기차 제조 방식인 ‘기가캐스팅’과 유사한 기술로, 강판을 조립하고 용접하는 대신 차체를 한 번에 찍어낸다. 이 같은 제조 방식을 채택할 경우 생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차체를 경량화할 수 있다. 미래 전기차 시장 내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첨단 공법’인 셈이다.

한편 비슷한 시기 현대차는 주력 스포츠유틸리차량(SUV)의 신형 모델부터 순수 내연기관 엔진 생산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싼타페, 쏘렌토 등 세단보다 상대적으로 오염물질 배출량이 높은 SUV를 중심으로 ‘100% 전동화’를 추진, 2025년 도입이 예고된 유럽연합(EU) 차기 배출가스 규제 ‘유로7’ 시행에 발맞추겠다는 구상이었다. 업계에서는 향후 현대차가 아반떼, 그랜저 등 세단 라인업의 파워트레인까지 하이브리드를 기본 제공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렸다.

성장 동력 잃은 전기차 시장

하지만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하며 상황이 급변했다. 에너지 전문 시장조사업체 SNE 리서치의 ‘글로벌 전기자동차 시장 및 배터리 수급 전망(∼2035)’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전기차 판매량은 약 1,641만 대로 전년 대비 16.6%의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지난해 성장률(33.5%) 대비 16.9%p 급감한 수준이다. 시장 둔화의 원인으로는 △얼리어답터의 초기 구매 수요 감소로 인한 대기 수요 위축 △충전 인프라 부족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 등이 지목됐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캐즘(Chasm)’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흘러나온다. 캐즘은 초기 시장과 주류 시장 사이에 나타나는 수요의 하락·정체 현상을 일컫는 용어다. 초기 시장 기반을 닦은 업계가 극복해야 하는 일종의 과도기인 셈이다. 캐즘을 극복한 시장은 주류 시장 편입에 성공하며 대중화 단계로 나아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시장은 일부 얼리어답터들의 전유물로 남으며 무너지게 된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세가 한풀 꺾인 가운데, 현대차의 전동화 동력이었던 EU ‘유로7’마저 힘을 잃었다. 자동차 업계의 강력한 반발을 이기지 못한 EU와 의회가 배출가스 기준을 현행 ‘유로6D’ 수준으로 유지하는 완화된 안을 최종 의결하면서다. 시장 상황이 급변하며 현대차 역시 ‘100% 전동화’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업계에서는 차후 현대차가 내연기관차와 전기차 생산·판매 비중을 적절히 조절,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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