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9 비자 외국인 근로자들, 계약해지 거부하면 태업·꾀병으로 대응

제도 악용 외국인 근로자 계약 해지 요구와 태업 ‘심각’ 수준 외국인 근로자들, “비싼 돈주고 입국한 만큼 편한 사업장 가고싶다” 이민청 설립이 만능 해결책은 아냐,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소해야

1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중소기업 외국 인력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하고 있다/사진=중소기업중앙회

중소기업중앙회(이하 중기회)가 노동력 부족으로 외국인력 채용이 불가피한 중소기업의 고충을 해결하고자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특정 비자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초기 일정 기간 동안 배정받은 사업장을 옮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근무한 지 6개월도 안 돼 사업장을 옮기겠다며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이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태업하는 행태로 인해 기업들의 인력난이 더욱 심화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중소기업, 외국인 근로자들의 사업장 변경 요구에 시름

1일 중기회는 서울 여의도 중기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외국 인력 정책토론회’는 비전문 외국인력(E-9 근로자) 비자를 활용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현장 애로 사항을 청취하고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간 중소기업들이 외국인 근로자 활용에 있어 가장 큰 애로로 지적했던 사항은 ‘사업장 변경 제도’가 명확하게 없다는 점이었다. 지난달 중기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장 변경을 위해 계약 해지를 요구한 사례’가 있었던 기업은 68%(수도권 25.8%, 비수도권 74.6%), ‘사업장 변경을 요구한 외국인 근로자 수’는 기업당 평균 3.7명이었으며 ‘사업장 변경 요구 시점’은 ‘입국 후 3개월 이내’가 25.9%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또한 이 중 58.2%의 기업이 입국 후 6개월 이내에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다고 응답했다.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에 따른 애로사항으로는 ‘대체 인력 구인 애로’가 81.2%로 가장 높게 집계됐다. 이어 ‘외국인 근로자 도입비용 손실’(57.1%), ‘제품 생산 차질’(55.0%)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플라스틱 사출 업체 동진테크를 운영하는 이동수 대표는 “플라스틱 사출 작업은 로봇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6개월 이상 숙련을 필요로 한다”며 “그때까지 인력 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인데 3개월 하다가 나간다고 하면 중소기업은 어떻게 하겠냐”고 토로했다.

출처=중소기업중앙회

E-9 비자 제도의 허점 악용 막아야

통상 E-9 비자를 통해 국내에 입국한 외국인 근로자들은 3년의 체류 기간 동안 최대 3번 사업장을 옮길 수 있다. 1년 10개월 체류를 연장할 시 총 4년 10개월간 최대 5회 변경이 가능한 셈이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행태에 대해 중소기업들의 피로감이 크게 누적된 것으로 보인다”며 “불가피한 사유가 없음에도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장 변경을 시도할 때 사업자에게도 최소한의 대응 장치는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용자 귀책이 아닌 경우 초기 일정 기간은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사업주와 근로자 간 분쟁 발생 시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조정기구 마련, 장기 근속 근로자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구인·구직 미스매치 해소를 위한 정보제공이 강화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재광 중기회 노동인력위원회 위원장도 “현 정부의 외국인력 정책 중 도입 인력을 늘린 것은 만족스럽다”면서도 “제도 개선 측면에서는 기업들이 현장에서 체감할 만한 개선이 이뤄졌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작년 장부가 발표한 ‘고용 허가제 개편 방안’이 속도감 있게 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작기계, 선박 부품 등을 생산하는 한국기전금속의 김동현 대표는 “주물 업계의 근로자 평균 연령이 60세를 넘은 것은 오래전”이라며 “젊은 인력을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으로 외국인 근로자 고용 시 입국하자마자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고 동의하지 않으면 태업으로 일관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 해지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E-9 비자를 업종별로 세분화하고 이직하더라도 동일 업종에서만 근무할 수 있도록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동수 동진테크 대표도 “인력난으로 가족들이 부족한 인력을 메우고 있는 실정”이라며 “외국인 근로자를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장 이전을 요구하고 거절하면 꾀병을 부려 일하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는다”고 호소했다. 이어 “영세기업 입장에서는 대응할 수단이 없어 고용노동부, 출입국 관리 사무소에서 현장의 실정을 제대로 알고 신속한 제도 개선으로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역설했다

이와 관련해 이명로 중기회 인력지원본부장은 “고용허가제 시행 취지에 따라 사업장 귀책이 없는 경우 계약기간 동안 사업장 변경을 금지하고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며 태업 등 부당 행위 시 본국으로 출국 조치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국회에 적극 건의 할 것”이라고 전했다.

출처=중소기업중앙회

기업 손실 너무 크다 vs 정당한 요구다

인력난으로 고통받는 중소기업에 있어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 요구는 기업에 큰 손실로 다가온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비자 발급을 위해 브로커에게 비싼 돈을 주고 입국한 만큼 편안한 사업장으로의 이직은 정당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E-9 비자의 경우 500~600만원의 금액이 필요하며 특정 활동 비자인 E-7의 경우 1,500만원 이상의 수수료를 브로커에게 지불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비자 발급 실패 시 100% 환불을 내세우는 전문 행정사까지 늘어나는 추세다. 중개수수료에 대한 문제점이 많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외국인 노동자 인력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일자리 중개자 역할을 하는 브로커가 넘쳐나는 데다 알선 수수료가 연간 수백억원 대로 치솟으면서 이에 따른 문제도 함께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동차용 센서 및 정밀기어 생산 기업인 성원A.C공업의 사례만 봐도 제도를 악용하는 브로커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원충 성원A.C공업 대표는 “외국인 노동자가 계약 해지를 요구해 거절했더니 무단결근을 하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주의를 주자 얼마 후 노동청에서 고발장이 접수됐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브로커로 보이는 사람이 근로자 계약 해지에 동의하라고 요구를 해왔다”며 “이는 사업장 이전을 목적으로 고발까지 하고 브로커를 이용해 계약 해지를 유도하는 악질 사례”라고 날을 세웠다.

출처=중소기업중앙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 필요

극심한 인력난에 일부 중소기업들은 자동화 설비를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설비 비용 및 유지 비용으로 인해 일부 중소기업을 제외하고는 이마저도 필수 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높은 임금을 제시해도 젊은 내국인 근로자들을 찾기 힘들 뿐만 아니라 차선책으로 고용한 외국인 노동자마저 잦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앞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1년 전 취임 일성으로 이민정책 콘트롤타워인 ‘이민청’ 신설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6월 중 이민청 신설과 외국인정책기본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민청 설립만으로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과 태업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인구 증가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취업비자로 입국한 근로자들과 기업 간에 불거지는 문제는 노동자 계약과 관련한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가시적인 효과는 보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이에 중기회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중기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사업주의 잘못이 없음에도 외국인 근로자가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며 태업 등 부당한 행위를 할 때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로 △강제 출국 △재입국 시 감점 부여 △체류 기간 △외국인 근로자의 법적 의무 근로 기간 설정 등을 꼽았으며, 이 밖에 △사업자 변경을 하지 않은 외국인 근로자에게 인센티브 제공 및 체류 기간 연장 △가산점 부여와 같은 다양한 의견도 있었다. 또한 외국인 근로자 채용 시 △이전 사업장에서의 근무태도 △건강 상태 등의 정보를 추가로 제공해야 한다는 응답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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