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배터리 분리막 재활용해 ‘의류 소재’ 만드는 라잇루트, 22억 투자 유치

폐배터리 분리막 재활용해 고기능성 의류 소재 ‘텍스닉’ 개발 성공 패션업계에 불어든 ‘친환경’ 바람, 코오롱·삼성물산 등 대기업과 협력 도모 전 세계가 주목하는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문제, ‘패션’으로 새로운 돌파구 제시해

사진=라잇루트

글로벌 리사이클 기업 라잇루트가 22억5,000만원 규모의 프리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고 4일 밝혔다. 이번 투자에는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 UTC인베스트먼트, 더인벤션랩 등이 참여했다.

라잇루트는 폐기된 배터리 분리막을 고기능성 소재로 재활용한 섬유 ‘텍스닉’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업이다. 최근에는 삼성물산의 ‘빈폴골프’가 라잇루트와 손잡고 텍스닉 소재로 만든 가방 등의 제품을 출시했으며,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제로그램’과도 협업을 준비 중이다. 라잇루트는 이번 투자를 계기로 우수 인력들을 채용하고, 자체 생산 공장을 확보하는 등 사업 역량을 강화해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신민정 라잇루트 대표는 “분리막은 2차전지의 안정성을 위해 쓰이는 플라스틱 필름인데, 사용 이후 폐기량이 국내에서만 연간 1만 톤 이상”이라며 “(라잇루트는) 이를 부가가치가 높은 원단 제품으로 재활용하려는 유일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터리 분리막으로 만든 신소재 ‘테스닉’

라잇루트는 원래 디자이너 인큐베이터 분야에서 청년 디자이너들을 도와 함께 옷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사업을 하던 기업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업이 어려움을 겪게 되자, 다양한 의류 소재를 접했던 경험을 토대로 ‘폐배터리 분리막 필름’을 이용한 자체 소재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다.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라잇루트는 2020년 12월 환경부와 SK이노베이션이 함께 한 ‘환경 분야 소셜 비즈니스 발굴 공모전’에서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성장 지원금 2억원을 받게 됐다. 이에 더해 SK이노베이션의 리튬이온 배터리 분리막 자회사인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와 많은 정보를 교환하게 되었으며, 개발에 필요한 필름도 수시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지원을 기반으로 라잇루트는 2021년 3월 배터리 분리막을 재활용해 고기능성 소재인 ‘리셀+’(RECELL+)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으며, 같은 해 10월 리셀+를 제작 유통하는 리사이클 브랜드 ‘텍스닉’(TEXNIC®)을 런칭했다.

사진=라잇루트

라잇루트는 배터리 분리막의 단면 구조가 고어텍스에서 사용하는 ‘멤브레인 필름’과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분리막의 미세한 구멍들이 고어텍스 수준의 투습성, 방풍성, 방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고어텍스 원리를 활용해 새로운 소재를 개발해낸 것이다. 실제 분리막 필름에 뚫린 수만 개의 구멍은 수증기보다는 커서 땀을 밖으로 배출하며, 물방울보다는 작아 방수 기능을 갖췄다.

이렇게 개발된 리셀+는 다양한 패션 소재를 대체할 수 있다. 일례로 리셀+와 폴리 소재를 결합하면 원사(실) 17%를 절감할 수 있다. 한 벌당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0.2kg 절감된다. 리셀+와 친환경 공정을 거쳐서 만든 에코 레더(eco leather)를 함께 사용하면 천연 소가죽 의상 한 벌당 약 179.85kg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량을 85% 절감할 수 있다.

배터리 분리막의 저렴한 가격대 역시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라잇루트는 고어텍스 멤브레인 필름 가격의 40분의 1 수준 가격으로 배터리 분리막을 공급받고 있다. 폐기 처리 위기에 놓인 잉여 필름을 재활용하기 때문이다. 완성된 분리막을 분해해 재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다시 사용하는 만큼 공정에 드는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친환경·사회적 기업, ESG 경영 트렌드 부합

분리막은 배터리에서 양극과 음극을 분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부품이다. 하지만 리튬이온전지 분리막은 높은 정밀도가 요구되어 미세한 상처로도 상품성이 쉽게 훼손되고, 산업 특성상 과잉 생산으로 많은 재고가 발생한다. 버려지는 수많은 리튬이온전지 분리막은 심각한 환경오염 문제를 낳았다. 하지만 라잇루트는 이를 활용해 내구성 좋은 고기능성 원단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텍스닉은 방풍·투습·내수 등 기능성 의류의 장점을 일상복으로 가져왔다. 이는 패션업계에 불어든 친환경 바람과 큰 시너지를 창출했다. 최근 패션업계는 ‘패스트 패션’으로 인한 환경오염 비판에 직면해 있다. ‘패스트 패션’이란 빠르게 변하는 유행에 따라 대량 생산되는 저렴한 의류를 말한다.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 새로운 제품들이 끊임없이 출시되며, 유행이 지난 제품들은 쉽게 버려진다. 이로 인해 패션 산업은 전 세계 8~10% 수준의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이는 항공과 해운 분야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준이다.

문제의식을 느낀 의류 기업은 최근 속속 친환경 소재를 활용한 제품을 내놓고 있다. K2, 노스페이스, 파타고니아 등 국내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리사이클 소재의 제품들을 출시했으며, 해외에서도 나이키, H&M 등 글로벌 브랜드가 친환경 섬유 사용 비중을 늘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패스트 패션 유행이 지나가고, 친환경 패션 시장이 점차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텍스닉 소재로 개발된 의류/사진=라잇루트

라잇루트는 코오롱, 삼성물산, 빈폴, 이랜드 등 패션업계 대기업과의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코오롱 같은 경우 친환경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기업인 만큼, 양사 간 상당히 긴밀한 협력이 오가고 있다는 전언이다. 라잇루트는 이제 패션업계 친환경 전환의 중점인 ‘친환경 소재’ 문제를 해결할 기업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에 더해 라잇루트는 청년 디자이너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사회적 기업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의류 사업을 시도한 청년층 4명 중 3명(76.5%)이 3년도 채 버티지 못하고 꿈을 접고 있다. 라잇루트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자이너들이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실무 위주의 교육을 제공하며, 공모전 기반의 ‘라잇루트 브릿지’라는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라잇루트 브릿지는 기업이 원하는 디자인의 공모전을 개최하면 청년 디자이너가 그 공모전에 참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기업은 단일 비용으로 다양한 시안을 받아볼 수 있고, 청년 디자이너는 작품이 우승작으로 선정되면 상금을 얻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라잇루트는 이국종 교수팀 헬기복, WWF 콜라보 프로젝트 등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 진행 시 청년 디자이너와 함께하며 이들에게 수익 창출 기회 및 실무 경험을 제공해왔다.

전기차가 남기는 거대한 ‘생태 발자국’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2040년에는 전기차가 전 세계 승용차 판매량의 3분의 2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시장의 급성장에 따라 배터리 시장도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수요에 발맞춰 많은 전기차가 생산되는 만큼, 차후 폐기되는 차량과 배터리 역시 함께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전기차 배터리는 생산 후 5~20년 사이에 수명을 다하게 되며, 잔존수명(SOH: State of health)이 초기 용량 대비 7~80% 남았을 경우 주행 거리 감소, 충전 속도 저하, 급속 방전 리스크 문제가 발생해 교체가 불가피하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폐기량은 2020년까지 연간 10.2만 톤, 2040년에는 연간 78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시장에서는 리튬 배터리 재활용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니켈, 리튬, 코발트 등 배터리 소재 수요가 폭증하는 반면, 채굴량은 한정되어 있어 핵심 소재를 둘러싼 신자원 민족주의와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최근 1년간 니켈 가격은 톤당 1만5,988달러에서 4만2,995달러(5,250만원)로 168.9%(2.7배) 상승했고, 탄산리튬 가격은 킬로그램당 80위안에서 472.5위안(9만원)으로 490% 급등한 바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원통형 전지/사진=LG에너지솔루션

리튬 배터리에 들어가는 금속을 채굴하는 데 막대한 자원이 소모된다는 점도 문제다. 리튬 1톤을 채굴하는 데 필요한 물은 50만 갤런(약 227만3,000리터)에 달한다. 전기차가 도로에서 달릴 때는 CO2 배출이 분명히 감소하지만, 이에 활용되는 전기차 배터리는 커다란 ‘생태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셈이다. 생태 발자국은 인간이 지구에서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의·식·주 등을 제공하기 위한 자원의 생산과 폐기에 드는 비용을 토지로 환산한 지수다.

하지만 기존의 분쇄 위주 납 배터리 재활용 방식은 리튬 배터리에는 적합하지 않다. 리튬 배터리는 조심스럽게 분쇄하지 않을 경우 폭발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세계 각국에서는 환경오염을 줄이고, 리튬 배터리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재활용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실제 글로벌 전기차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2017년 1.4억 달러에 불과했으나, 2018~2025년 중 평균 41.8% 성장하며 2025년에는 22.8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리튬 배터리 재활용을 위한 노력

통상 전기차 폐배터리를 다시 사용하는 방법은 수리를 통해 수명 연장 후 사용하는 방법 외 재사용(Reuse)과 재활용(Recycle)으로 나뉜다. 재사용은 잔존용량이 높은 폐배터리의 팩을 일부 개조하거나 기존 팩 그대로 수거하여, 해체 및 안전 테스트를 거친 후 ESS(Energy Storage System) 상품화를 통해 재사용하는 방식이다. 재활용(Recycle)은 폐배터리를 셀 단위에서 분해한 뒤 전극 소재, 특히 코발트, 리튬, 니켈 등 고가 소재를 추출하여 재활용하는 방식을 뜻한다. 하지만 리튬 배터리 특성상 ‘재사용’ 방식에는 한계가 있어 다수의 연구가 ‘재활용’에 초점을 맞추어 진행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에 가장 강력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2021년 중국의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시장 규모는 165억 위안(3조1,000억원)에 달했다. 중국은 배터리 이력 관리와 함께 재활용을 생산자가 책임지는 생산자 책임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베이징·상하이를 포함한 17개 지역에서 폐배터리 재활용 시범사업도 진행 중이다. 또한 폐배터리에서 핵심 소재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니켈, 코발트, 망간은 98%, 리튬 85%, 기타 희소금속은 97%를 회수 목표치로 설정하여 운용하고 있다.

라잇루트가 폐분리막을 활용하는 것 역시 ‘재활용’의 사례다. 2022년 국내에서 버려지는 배터리 분리막은 연간 1만 톤 이상이다. 상품성에 전혀 문제가 없는 분리막도 매월 축구장 130개 넓이만큼 버려지고 있다. 버려지는 분리막은 심각한 환경오염을 유발하는데, 라잇루트는 이를 활용한 업사이클링 원단 개발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소재 및 디자인 시장에서 2차전지 업계에 하나의 돌파구를 열어준 셈이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특성상, 배터리의 재사용 및 재판매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하지만 버려지는 폐기물의 일부분을 재활용할 경우, 2차전지뿐만 아니라 패션, IT 등 수많은 분야에서 혁신적인 아이템이 탄생할 수 있다. 차후 라잇루트의 ‘텍스닉’처럼 세계 각국에서 환경오염을 막기 위한 창의적인 폐배터리 활용책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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